새벽에 눈을 비비며 소록도에 처음 도착했다. 찌는 듯한 더위와 인천과는 다른 이국적이라는 말에 가까운 풍경이 나를 반겨주었다. 덜 깬 모습 그대로 강의와 설명을 듣고 일정에 나섰다.
첫째 날에는 처음으로 발물관과 역사관을 구경했는데, 역사에 대해서 이미 알고있었지만 직접 와서 두 눈으로 마주해 느끼는 것은 그동안에 알았던 것과는 또 다른 역사였다. 사람들은 잔인했고, 한센인들은 멸시와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다. 역사의 아픔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중앙리 마을로 떠났다.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선풍기 청소, 에어컨 청소를 도와드렸다. 어수룩한 말투로 자신들이 어떻게 이 곳에서 살아왔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 어르신들의 말을 듣다보면 마음이 저절로 아파왔고, 죄송해졌다.
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가지 생각이 들었었는데, 우선 나는 종교랑은 거의 연을 끊고 살아온 사람이다. 교회나 성당에 가본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것이다. 하지만 이 분들이 말씀과 삶의 애환과 그 속에 담긴 무게와 고통을 직접 보고, 듣고, 느끼다 보니 이 분들에게 종교라는 것은 삶 그체이시면서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자 안식처이고, 지옥 같은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한 것었을 것이다. 나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, 만일 천국이 있다면 신은 마땅히 그 분들을 위해 천국 가운데 자리를 마련해야 하고, 나 또한도 그 분들이 그 자리 가운데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이다.
물론 소록도에서는 그 핍밥과 멸시의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지금은 많지는 않다. 하지만, 남아계신 모든 분들이 살아있는 역사이다. 나는 그 분들의 맺힌 한과 삶의 설움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 할 수는 없겠지만, 선풍기를 청소하고 마늘을 까고 에어컨을 청소하고 의자를 옮기는, 그리고 찬송을 불러드리는 이 모든 행위가 조금이나마 그 분들의 살아오신 삶에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.
세상은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, 어떤 삶의 애환을 가지셨는지 관심도 없는 듯 빠르게 변해간다. 그러면서 어르신들은 점차 세상의 역사 가운데로 사라져가신다. 이 섬에 남은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더 많이 기록되고,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원하며 오늘 밤 딱 하루만 그 분들을 위해 혼자 기도해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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